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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남아가 여아보다 진단률이 4배 이상 높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UC 샌디에이고 의과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인식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2,500여 명의 유아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자폐 진단 초기에는 남녀 간 임상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연구는 학술지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에 발표되었으며, 향후 조기 진단과 개입 전략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는 2002년부터 2022년까지 20년간 진행됐다. 대상은 생후 12개월부터 48개월까지의 유아로, 자폐 진단을 받은 1,500명과 일반 발달군 600명, 발달 지연군 475명 등 총 2,575명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언어, 사회성, 운동 기능, 반복 행동, 인지력 등 총 19가지 발달 항목을 평가했으며, 시선 추적 장비를 통한 사회적 주의력 측정도 병행했다. 모든 평가는 UC 샌디에이고 자폐센터에서 임상 심리 전문가들에 의해 동일 조건 하에 실시됐다.


그 결과, 자폐 진단을 받은 남녀 유아 간 대부분의 항목에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예외는 일상생활 기능 항목에서 여아가 약간 더 높은 점수를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는 양치질이나 옷 입기처럼 일상적인 자조 행동을 부모가 보고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 실제 임상 차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연구진은 자폐 유아들을 능력 수준에 따라 하위 그룹으로 나누어 분석했지만, 이 경우에도 남녀 간 임상 지표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아가 동일 유아를 수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생후 12개월에서 48개월 사이에도 성별에 따른 발달 경로의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의 소규모 연구들과는 상반된 것으로, 과거 100명 이하의 참가자를 기반으로 성별 차이를 주장한 연구들은 표본의 한계와 측정 도구의 편향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일반 발달 유아 집단에서는 성별 차이가 명확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여아는 언어, 사회성, 일상기능 등에서 남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는 기존의 발달학적 데이터와도 일치한다. 하지만 자폐 유아의 경우 이러한 성숙 속도 차이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폐의 초기 증상은 성별과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번 연구를 이끈 카렌 피어스 박사는 “진단 초기 자폐 아동에게서 성별 차이가 없다면, 향후 그 차이는 생물학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기대나 양육 환경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자폐 아동의 조기 개입 전략은 성별이 아닌 발달 특성과 능력 기반의 맞춤형 접근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무게가 실린다.


피어스 박사는 “아이의 언어와 의사소통 능력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끌어올릴수록 그 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사회에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자폐 진단과 개입 전략의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초기 평가 시스템의 정교한 설계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조기 진단 도구의 성별 편향 여부를 점검하고, 성중립적 개입 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