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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감염병 감시체계 중 하나로 꼽히는 \'전 세계 홍역·풍진 실험실 네트워크(GMRLN)\'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전액 지원해오던 이 네트워크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대폭 축소된 글로벌 보건 지원 정책의 여파로, 핵심 예산이 끊기면서 조만간 운영이 중단될 상황에 직면했다.


GMRLN은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공식 설립된 실험실 감시체계로, 현재 160여 개국에 걸쳐 약 760개의 지역·국가·하위기관 실험실로 구성돼 있다. 이 네트워크는 전 세계적으로 재유행 중인 홍역 바이러스의 실시간 유전자 감시, 발병 국가 추적, 백신 효과 평가 등을 전담해왔다. 풍진(Rubella)에 대한 감시도 함께 진행해왔으며, 감염자 발생 현황과 백신 면역률 감소 추세를 선제적으로 알려주는 \'조기경보 시스템\'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현재 CDC의 연간 900만 달러 예산이 끊긴 가운데, WHO 산하 파트너 기관들은 2026년까지 한시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응급 모금에 돌입했다. WHO 재단과 엘마 백신 및 면역재단은 약 360만 달러를 마련하는 데 나섰고, 이 중 절반은 민간 재단의 매칭 펀드로 채워질 예정이다.


문제는 단지 예산 부족만이 아니다. 각국 실험실에 전달되던 시약과 분석도구 공급이 중단될 경우, 일부 국가는 홍역 검사를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감염 여부를 실험실에서 확인하지 못하면 현지에서 보고되는 발열·발진 증상이 홍역인지 다른 질환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어, 예방접종 대응과 백신 보급이 엉뚱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WHO 면역·백신국장 케이트 오브라이언 박사는 \"홍역은 발열과 발진을 동반하는 질환이지만, 뎅기열이나 기타 바이러스와 초기 증상이 비슷하다\"며 \"정확한 진단 없이 백신 자원을 낭비하게 되면, 더 큰 유행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23년 WH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홍역 감염자는 전년도보다 20% 증가한 1,030만 명에 달했고, 이 중 10만7천여 명이 사망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백신 접종률이 급감한 데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백신 불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현재처럼 국가 간 감시망이 붕괴되면, 감염 확산은 더욱 빠르게, 넓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다.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만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가 3명 발생했으며, 이는 지난 24년간 미국 전체 홍역 사망자 수와 같다. 올해 들어 CDC가 집계한 미국 내 홍역 감염자는 1,168건으로, 2000년 \'홍역 퇴치 국가\' 선언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해외에서 유입된 감염 사례가 지역사회 내에서 장기간 전파될 경우, 미국의 홍역 퇴치 지위도 박탈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WHO 측은 궁극적으로 GMRLN을 확대 개편해, 향후 뎅기열, 황열, 코로나19 등 다양한 백신 예방 가능 감염병까지 아우르는 \'GMRLN 2.0\'으로 진화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한 설계와 논의는 이미 수년 전부터 CDC 내부에서도 추진됐지만, 팬데믹 여파로 중단된 상태였다.


엘마 재단의 로빈 칼더 대표는 “이 네트워크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전 세계 백신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라며 “단기적으로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지금이야말로 세계가 협력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