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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암세포의 진화와 치료 저항성을 유도하는 핵심 단백질 ‘팍실린(paxillin)’의 작동 메커니즘이 처음으로 정밀하게 규명됐다. 미국 시티오브호프 종합암센터(City of Hope)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진은 과학 저널 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팍실린이 국소부착단백질(focal adhesion protein)로서 세포 외부 자극에 반응해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며, 이 과정이 암 발생 및 치료 회피와 밀접히 관련돼 있음을 밝혔다.


팍실린은 세포 내외의 신호 전달을 조율하며 세포 이동성, 생존, 증식을 조절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무질서(disordered)한 특성 탓에 약물 개발의 표적으로 삼기 어려운 단백질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팍실린과 국소부착인산화효소(FAK)의 상호작용을 차단하면 암세포 선택적 억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정상세포에는 덜 발현되는 특성을 활용한 정밀치료 전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라비 살지아(Ravi Salgia) 박사는 이미 1995년 하버드대 재직 당시 세계 최초로 인간 팍실린 유전자를 완전 분리해낸 인물로, 30년 넘게 해당 단백질을 추적해온 전문가다. 그의 팀은 이번 연구에서 팍실린과 FAK의 결합 핵심 부위를 집중 분석하고, 이들이 서로 결합할 때 비정형적인 구조에서 일시적으로 안정화된 입체구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이 구조는 제한된 공간 내에서 단백질 크기가 축소되어야만 결합이 이뤄지며, 이후에도 높은 유연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특이성이 강조됐다.


연구팀은 이처럼 ‘유동적인 결합’이라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암 관련 단백질뿐 아니라 다른 무질서 단백질군(disordered proteins)에도 적용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기존 고정된 결합 부위만을 겨냥한 신약 개발 전략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다양한 실험기법을 융합한 결과로 완성됐다. 특히 의료 MRI 기술에서 파생된 핵자기공명(NMR) 분광법을 활용해 팍실린의 구조적 특징을 포착했고, 여기에 분자 동역학 시뮬레이션과 3D 컴퓨터 모델링을 접목해 결합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의 공동 책임저자인 수프리요 바타차르야(Supriyo Bhattacharya) 박사는 “단일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복잡한 상호작용 구조를 여러 방법을 통합해 명확히 재현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에는 시티오브호프의 의과학, 계산의학, 단백질구조 분석 연구자들을 포함해, 메릴랜드대, 미국국립표준기술원(NIST) 소속 분광학 전문가들이 참여해 융합형 연구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로 이 결합 구조를 기반으로 한 저분자 억제제 또는 결합 방해 분자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향후 폐암, 위암, 난소암 등 팍실린 과발현이 확인된 암종에서의 적용 가능성도 검토할 예정이다. 단백질 간 ‘움직이는 결합’을 겨냥한 정밀항암치료제 개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