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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기억을 저장하면서도 기존의 오래된 기억을 보존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정보를 지속적으로 덧입히면서도 기존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뇌의 메커니즘은 오랫동안 신경과학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최근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 연구진이 이 문제에 대한 단서를 제시했다.


국제 학술지 《Nature Neuroscience》에 게재된 이번 연구는 해마(hippocampus) 내 CA1 영역에 위치한 ‘위치세포(place cells)’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기억이 어떻게 생성되고 축적되는지를 살펴봤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특정 행동 과제를 학습시키는 동안 이들 뉴런의 활성 패턴을 칼슘 이미징 기법으로 관찰했다.


연구에 참여한 생쥐들은 러닝머신 위에서 빛 신호에 따라 반응해야 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과제를 7일간 반복 학습했다. 이 과정에서 해마의 위치세포 중 일부는 점차 안정적인 활동 패턴을 형성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뉴런이 반복적으로 활성화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는 뇌가 중요한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고정시키는 과정의 핵심 메커니즘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사친 바이디야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기억 형성의 증거로, 안정적인 위치세포의 수와 개별 세포의 안정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했으며, 대부분의 표상이 장기 안정적 세포로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안정된 뉴런조차도 매일의 학습 세션마다 다시 활성화되며, 이는 ‘행동 시간 척도 시냅스 가소성(BTSP)’이라는 빠른 시냅스 변화 과정에 의해 재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뇌는 일정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학습할수록 해당 정보를 담당하는 뉴런을 점점 더 안정적으로 변화시키지만, 이와 동시에 뉴런 간 연결은 유동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유연한 학습과 기억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계단식 상태 모델(cascade-type state model)’로 설명하며, 특정 뉴런이 반복적으로 활성화될수록 안정성이 증가해 장기기억의 일부가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성은 시냅스 강도의 영구적인 고정이 아닌, 뉴런 특이적 가소성 증가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구는 뇌가 왜 기억을 지우지 않고도 새로운 정보를 계속 축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을 제공하며, 향후 기억 상실이나 신경퇴행 질환의 치료 연구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인간의 기억 체계를 모방하려는 인공지능 개발에도 응용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