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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조직을 절개하거나 절제하지 않고 혈액만으로 암을 진단하는 \'액체생검\'은 지난 10여 년 간 암 조기진단 기술의 혁신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암세포의 유전정보를 담은 DNA 조각이 혈액에 충분히 유출되어야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암이 아직 작고 활동성이 낮은 초기 단계에서는 이 DNA 양이 부족해 민감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액체생검 기술이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연구팀에 의해 개발돼,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 Biotechnology를 통해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종양 유래 DNA 대신 RNA 변형을 분석함으로써 대장암을 조기에 95% 정확도로 감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 진단 분야에 큰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연구를 이끈 Dr. Chuan He 교수는 “기존 방식은 혈중 떠다니는 DNA(cfDNA)를 분석하는 것이었지만, 초기 암에서는 이런 DNA가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대신 RNA를 보고자 했고, 그 중에서도 RNA의 양이 아닌 ‘화학적 변형’을 정밀하게 측정했다”고 설명했다.


RNA는 DNA의 명령을 전달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유전물질로, 세포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RNA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은 표본 처리 과정이나 채취 시간에 따라 변동성이 커 신뢰도가 낮았다.


이에 연구팀은 RNA 분자의 \'수정 패턴\'에 주목했다. RNA에 특정 화학 변형이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면, 이 비율은 전체 RNA 양과 관계없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어떤 RNA의 30%가 변형되었다면, 이 비율은 RNA가 100개이든 1,000개이든 같다는 의미다. 이러한 안정성을 활용해 RNA 변형 수준을 암 진단 지표로 삼은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분석된 RNA 중 상당수가 인간 세포가 아닌 \'장내 미생물\'에서 유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대장 내 미생물 군집은 종양 발생 시 염증 반응에 따라 구성과 활성이 빠르게 바뀐다. 연구팀은 이 같은 미생물의 RNA 변형 패턴이 암 환자와 정상인 사이에서 뚜렷이 다르다는 점을 밝혀냈다.


Dr. He 교수는 “종양 주변 장내 환경이 염증으로 재편되며 미생물의 생존 및 증식 양상이 바뀌고, 이에 따라 방출되는 RNA에도 변화가 생긴다”며 “이 RNA의 변형 수준은 초기 대장암 존재 여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제안된 RNA 변형 기반 진단법은 현재 상용화된 대장암 변변검사(DNA 또는 RNA 기반)보다 민감도가 높았으며, 특히 1기 이하의 조기 단계에서도 95%의 정확도를 보였다. 기존 대장암 DNA 진단의 초기 민감도는 통상 50% 이하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향후 대장암뿐 아니라 다양한 암종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상용화를 위한 추가 임상연구도 추진 중이다. 또 RNA 변형이 노화, 면역 질환, 대사 장애 등 다른 질환에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다양한 바이오마커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