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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암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유전자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되면서, 결국 악성 종양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세포 진화’라는 복잡한 경로를 따른다. 독일 암연구센터(DKFZ)의 연구팀이 이 세포 진화의 흐름을 단 한 번의 조직 샘플로 역추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Nature Genetics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토마스 회퍼(Thomas Höfer) 박사는 \"최초 돌연변이 발생 후 가시적인 종양이 형성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점에 주목했다\"며, \"그 긴 시간 동안 개입할 수 있다면 암 발생을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SCIFER라는 분석 도구로, 세포 집단 내에서 암 유발 가능성이 높은 클론(clone)의 진화 시점을 파악할 수 있다. SCIFER는 수백 개에 달하는 중립적 돌연변이 패턴의 변화를 기반으로, 암 유발 돌연변이가 언제 발생했는지, 그 세포가 얼마나 빠르게 증식하고 있는지를 계산한다.


특히 SCIFER는 옥스퍼드대학의 혈액종양 전문 연구팀과의 협업을 통해 건강한 사람의 골수 샘플에서도 정확도를 입증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혈액검사만으로도 조기 암 위험을 평가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온코진, oncogene)는 실제로 체내에서 자주 발견되지만, 돌연변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암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이번 연구의 중요한 메시지다. 연구진은 \"변이된 온코진이 있는 뇌세포를 확인했지만, 이들이 암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으며, 이는 우리 몸 안에 위험 세포를 통제하는 방어 기전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어떤 환경 요인이 세포를 암으로 진화시키는지, 또 어떤 요인이 이 과정을 차단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만성염증과 같은 세포 미세환경 변화가 암 유발에 영향을 준다는 기존 가설도 함께 검증할 예정이다.


이 기술은 특히 **골수이형성증후군(MDS)**처럼 일부 환자만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행되는 질환에 유용할 수 있다. 회퍼 박사는 \"SCIFER를 통해 누가 실제 고위험군인지 선별하고, 그에 맞는 사전 개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면 치료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이번 연구는 ‘암의 진화’라는 시간적 맥락을 기술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다. 암이 형성되기 전, 보이지 않는 위험 신호를 포착하고 미래의 질병을 예방하는 시대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