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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수십 년간 제기되어 온 경구피임약과 간암 간의 연관성에 대한 의학계의 우려가 대규모 연구를 통해 사실상 해소됐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와 영국 옥스퍼드대 공동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경구피임약 사용이 여성의 간암 발생 위험을 유의하게 높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결과는 국제학술지 The Lancet Oncology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영국 내 130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Million Women Study’(MWS)와 약 25만 명이 참여한 UK Biobank 데이터를 분석했으며, 평균 20년 이상의 장기 추적조사를 바탕으로 각 개인의 피임약 복용 여부와 간암 발생을 비교했다. 동시에 23개 기존 관찰 연구를 종합한 메타 분석도 함께 진행했다.


분석 결과, 경구피임약을 한 번이라도 사용한 여성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여성 간 간암 위험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MWS에서는 위험비(HR) 1.05, 95% 신뢰구간 0.97–1.13, UK Biobank에서는 HR 1.08, 95% CI 0.76–1.55로,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간암의 주요 아형인 간세포암(HCC)과 담관내암(ICC)에 대한 별도 분석에서도 피임약 복용과의 관련성은 전혀 없었다. 장기간 복용(10년 이상)에 따른 위험도 변화도 없었으며, 과거 일부 연구에서 지적된 ‘장기 복용 시 간양성종양이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 확인됐다.


메타 분석에서는 5,422명의 간암 환자를 포함한 23건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전체적으로 경구피임약 사용과 간암 위험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없었다(RR 1.04, 95% CI 0.98–1.11)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부 소규모 연구에서는 복용 기간 5년마다 위험이 소폭 상승(RR 1.06)하는 경향도 보였지만, 이는 기억 편향이나 교란 변수 통제가 미흡한 소규모 연구의 영향으로 해석됐다.


연구팀은 “1970년대부터 제기되어 온 경구피임약과 간암 간의 인과 관계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현대 여성에게 있어 간암 자체의 발생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장기 복용에 따른 미미한 위험 증가가 실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거 국제암연구소(IARC)가 경구피임약을 간암의 잠재적 위험요소로 분류한 이후, 수십 년 간 축적된 최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해석을 뒤집을 만한 가장 권위 있는 근거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경구피임약의 안전성에 대한 이번 연구 결과는 여성 건강권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피임을 비롯한 호르몬 조절 치료에 대해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오해를 줄이고, 환자와 의료진이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