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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상자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겪는 사건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과거의 기억을 끌어올릴까? 같은 장소나 같은 인물처럼 눈에 보이는 유사성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나 행동 같은 보이지 않는 구조적 유사성 때문일까?


스위스 제네바대학교(UNIGE) 연구진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표면적 유사성보다 ‘개념’에 기반한 구조적 유사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해당 개념이 기존의 ‘정신적 범주’로 이미 익숙할 경우에 한정된다. 반대로 이러한 개념적 틀이 없다면, 기억은 결국 익숙한 얼굴이나 장소 같은 표면적 단서에 의존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는 학습 전이와 개념 학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교육 현장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관련 논문은 WIREs Cognitive Science에 게재됐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특정 향기나 맛이 과거의 장면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표면적 유사성’에 의한 회상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최근 인지심리학에서는 그보다 깊은 층위의 유사성, 즉 상황의 구조나 의도, 문제 해결 방식 같은 ‘구조적 유사성’이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연구팀은 이 두 가지 회상 방식 중 어떤 것이 우선되는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정신적 범주의 유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는데 그가 다른 약속이 있다며 거절한다면, 과거에 같은 장소에서 그 친구와 식사했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운동을 피하기 위해 무릎 통증을 핑계로 댔던 기억이 연상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구조적 유사성’을 통한 회상이다.


제1저자인 루카스 레이날 박사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특정 상황이 ‘핑계’, ‘오해’, ‘위협’ 같은 익숙한 범주에 속한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 구조적 회상을 유도한다. 이러한 기억 방식은 개별 상황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본질적인 개념을 인식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난 50년간 발표된 약 100편 이상의 심리학 논문을 정리·분석해, 기억 회상 방식에 영향을 주는 일관된 패턴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하나의 심리 모델을 구축했으며, 앞으로 교육 심리학 분야에서 응용 연구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학습과 기억의 본질적인 문제인 ‘지식 전이’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흔히 학생들이 비슷한 수학 개념을 문제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 표면적 맥락이 달라 구조적 유사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이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제과점에서의 구매 상황과 스포츠 경기의 점수 계산이 동일한 수학 원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학생은 표면적으로 다른 문맥에 집중한 나머지 동일한 개념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이러한 학습의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개념적 틀’을 사전에 제공하는 교수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범주화할 수 있는 정신적 틀을 먼저 마련해야 다양한 예시 간의 연결 고리를 학습자가 스스로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연구는 인간의 기억이 생각보다 ‘지능적’이며, 맥락과 개념을 인식하는 능력에 따라 회상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교육적 현장뿐만 아니라 인간 이해, 심리치료, 인공지능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기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