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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말은 쉬워도, 대화는 어렵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눈빛과 표정, 목소리의 높낮이, 몸짓까지—비언어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얽히며 우리는 소통한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요소를 동시에 처리하는 일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오히려 순간순간이 시험대처럼 느껴질 수 있다.


최근 학술지 PLOS One에 실린 새로운 연구는 자폐 성인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비언어 소통(NVC)의 실제 난이도와 심리적 부담을 생생히 조명했다. 연구진은 자폐 당사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WrongPlanet.net’에 올라온 362건의 직접 경험담을 분석해, 자폐인이 느끼는 소통의 본질에 접근했다.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공통된 표현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어떤 이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눈을 보고, 손짓을 맞추는 일이 마치 머릿속에서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는 “비언어적 신호는 너무 해석이 다양해 오히려 혼란스럽다”며 “말로 솔직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실제로 연구 결과, 자폐인은 눈빛이나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 신호를 해석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인지 자원을 소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피로감으로 이어지고, 일상 속 대화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들의 비언어 표현 방식이 일반인의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오해받거나, 무례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이중 공감 문제(Double Empathy Problem)’다. 이는 자폐인의 소통 방식이 ‘문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의 표현이 서로 간의 오해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자폐인이 일반인의 방식에 맞추지 못해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는 일방적 관점에서 벗어나, 양측 모두의 이해와 적응이 필요하다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자폐인의 다양한 소통 전략을 소개했다. 일부는 연기 수업을 듣거나, 드라마 속 인물의 몸짓을 모방하면서 일반인의 표현 방식을 배운다. 반면 어떤 이들은 문자나 글쓰기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선호한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억지로 일반인처럼 행동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표현을 존중받고 싶다’는 점이었다.


이번 연구는 영국 포츠머스대학교 심리학부의 자폐 연구자 홀리 래드퍼드(Holly Radford) 박사 과정 연구원이 주도했으며, 공동 저자인 스티븐 캡 박사(포츠머스대), 브론티 라이딩거(로완대), 애슐리 드 마르체나(드렉셀대) 등 자폐인과 비자폐인이 협업한 프로젝트였다.


연구팀은 “비언어적 소통에 대한 자폐인의 실제 경험은 매우 구체적이며,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은 오히려 비자폐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일방적인 소통 기준이 아닌, 모두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폐 성인들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도 다양하게 개발해 왔다. 이들은 일반적인 소통 규칙을 따르기보다, 오히려 보다 명확한 언어적 표현과 시간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더 효과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연구진은 “병원, 학교, 직장 등에서 이 같은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자폐인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 연구는 자폐인의 ‘침묵’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르게 듣고, 다르게 말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소통의 본질이 진심을 주고받는 일이라면, 그 방식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