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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암세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기존 치료를 회피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면역 회피, 항암제 내성, 돌연변이 획득까지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생존을 이어간다. 북웨스턴대학교 연구진은 이러한 암세포의 \'적응력\' 자체를 차단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하며, 기존 항암제의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북웨스턴대 공대 생의학과 바딤 백만 교수 연구팀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항암제의 표적을 암세포 자체가 아니라 그 유전정보를 담은 구조물인 \'크로마틴(chromatin)\'으로 설정했다. 크로마틴은 DNA와 단백질, RNA 등이 결합된 복합체로,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고 억제될지를 결정하는 핵심 구조다.


연구진은 암세포가 크로마틴 구조의 \'재편성 능력\'을 통해 극단적인 생존 적응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나노 수준에서 수천 개의 ‘크로마틴 도메인’이 존재하며, 이들 각각은 세포의 유전자 발현 이력을 ‘기억’하는 일종의 저장 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기억이 곧 세포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며, 암세포는 이를 활용해 치료 저항성을 높인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크로마틴 구조를 재조정해 암세포의 ‘학습 능력’을 억제하면 기존 항암제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가정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FDA 승인 약물 1,000여 종을 스크리닝한 결과, 크로마틴 재편성 기능을 갖는 항염증제 ‘셀레콕시브(celecoxib)’를 선별했다. 이 약은 관절염 등 염증 질환에 널리 쓰이지만, 크로마틴 구조에 영향을 주는 부작용이 확인돼 연구 대상으로 선택됐다.


동물실험 결과, 항암제 파클리탁셀 단독 투여 시 종양이 계속 자랐지만, 셀레콕시브를 병용 투여하면 암세포의 적응 속도가 감소하며 종양 억제 효과가 약 2배 향상됐다. 암세포의 ‘기억’을 흐리게 만들어 치료 저항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기존 항암제의 용량을 줄이면서도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어 부작용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백만 교수는 “우리는 암세포를 직접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적응 능력을 제거하려 했다”며 “이 접근법은 단순한 항암제 병용이 아니라, 암세포의 학습 알고리즘을 차단하는 ‘기억 재코딩’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항암 치료를 넘어서, 심혈관질환이나 신경퇴행성 질환 등 다양한 복합 질환에서도 세포의 \'기억 오류\'가 핵심 병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제시한다. 세포가 유전자 발현 정보를 잘못 저장하거나 잃어버릴 경우 기능 이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질병이 유발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세포 기억의 소스코드’ 조절이 미래 정밀의학의 새로운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