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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염색체 말단을 보호하는 핵심 단백질인 RPA(Replication Protein A)가 인체 수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메디슨 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생화학과의 Ci Ji Lim 교수 연구팀은 RPA가 텔로머라제(Telomerase)의 작용을 자극해 염색체 말단 구조인 텔로미어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염색체는 DNA와 단백질이 뭉쳐 형성된 구조로, 그 끝부분에는 염기 서열이 반복되는 보호막 역할의 ‘텔로미어’가 존재한다. 텔로미어는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짧아지지만, 특정 단백질 이상으로 인해 이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면 조기 노화나 골수질환, 심지어 치명적인 혈액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인공지능 단백질 구조 예측 도구인 ‘AlphaFold’를 활용해 RPA와 텔로머라제의 결합 부위를 예측하고, 인체 세포 실험을 통해 RPA가 실제로 텔로머라제 활성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RPA는 기존에 DNA 복제와 손상 복구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RPA가 텔로머라제의 작용에도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RPA의 특정 변이는 텔로머라제의 작용을 방해해 텔로미어를 짧게 만들고, 이로 인해 염색체 불안정성과 유전자 손상이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은 골수이형성증후군, 재생불량성빈혈, 급성골수성백혈병 등 말단 염기 이상 질환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Lim 교수는 “지금까지 설명되지 않았던 짧은 텔로미어 질환의 원인이 RPA의 기능 이상일 수 있다는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는 환자의 돌연변이가 RPA의 텔로머라제 자극 기능을 방해하는지 확인함으로써 질환의 근본 원인을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임상 현장에도 즉각적인 파급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구가 발표된 이후 프랑스, 이스라엘, 호주 등 여러 국가의 연구자와 임상의들이 Lim 교수 연구팀에 협업을 요청하며, 환자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RPA-텔로머라제 결합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해 달라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희귀 유전질환 환자에게 새로운 진단 기준을 제시하고, 나아가 맞춤형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제약·바이오 산업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텔로머라제의 활성 조절은 노화 억제와 암 치료 연구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왔으며, 여기에 RPA의 역할이 추가되면서 새로운 약물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텔로머라제 자극이나 RPA-텔로머라제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신약 개발이 향후 바이오 산업의 주요 연구 축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인간 염색체 안정성을 유지하는 단백질의 새로운 기능을 밝혀내며,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짧은 텔로미어 질환’의 원인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생명공학과 의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번 발견은, 전 세계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의 단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정밀의학 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