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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확장성 심근병증(DCM)은 심장이 점점 늘어나며 수축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으로, 심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놀랍게도 이 질환은 흑인 인구에서 백인보다 약 두 배 이상 더 흔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원인은 고혈압이나 의료 접근성 같은 사회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최근 미국 매스 제너럴 브리검(Mass General Brigham)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이러한 인종 간 발병 격차의 핵심 원인을 유전적 요인에서 찾았다.


연구는 매스 제너럴 브리검,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 보스턴 재향군인병원(VA Boston)이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국제학술지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혈통을 가진 9만 5천 명 이상의 유전 정보를 분석한 결과, CD36 유전자의 한 염기 변이가 DCM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변이는 심장근육세포가 지방산을 에너지로 받아들이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연구에 따르면, 해당 변이를 한쪽 부모에게서만 물려받은 사람은 DCM 발병 위험이 33% 증가했으며, 양쪽 부모에게서 모두 물려받은 경우 위험이 거의 세 배로 높아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이가 아프리카계 인구의 약 17% 에서 발견된 반면, 유럽계에서는 0.1% 미만 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차이가 말라리아에 대한 생물학적 저항성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과거 말라리아가 유행하던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변이가 현대에는 심장 질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연구는 미국 재향군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VA Million Veteran Program의 방대한 유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이 가운데 무정자증 환자 약 2천 명을 포함한 아프리카계 참여자들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DCM과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또한 필라델피아대학의 Penn Medicine Biobank에 속한 1만 1천 명 이상의 아프리카계 참가자 데이터를 통해 결과가 재확인됐다. 심장 영상 자료를 보유한 다른 세 그룹에서도 동일한 변이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심장 기능 저하의 초기 징후가 관찰되었다. 즉,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에너지 대사 이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실 연구에서도 이 메커니즘은 명확히 드러났다. 연구진이 배양된 인간 심장세포에서 CD36 발현을 줄이자 세포 내 지방산 유입이 감소했고, 수축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는 곧 심근 에너지 공급 장애가 확장성 심근병증의 주요 원인임을 뒷받침한다.


논문 교신저자인 크리슈나 아라감(Krishna Aragam) 박사는 “CD36 유전자는 심장의 연료 공급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이번 발견은 아프리카계 인구의 심부전 위험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변이는 고혈압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치며, DCM의 약 20%의 초과 위험을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공동으로 이끈 패트릭 엘리노어(Patrick T. Ellinor) 박사는 “CD36 사례는 단일 유전자 변이가 심장 에너지 대사라는 근본적 생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극적인 예”라며, “유전학이 심혈관 질환의 숨겨진 원리를 밝혀내는 대표적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견은 심부전 진단 및 치료 방향에도 큰 변화를 예고한다. 연구진은 CD36 변이가 향후 심근병증 유전자 검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며, 이 경로를 조절하는 신약 개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유전학과 인종의 교차점에서 드러난 이번 연구는, 특정 집단의 질병 위험을 이해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