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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PD)은 여전히 완치가 불가능한 난제로 남아 있다. 1960년대 레보도파(Levodopa)가 도입되며 증상 조절에는 진전이 있었지만, 신경세포를 보호하거나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제는 아직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전략이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이다. 기존의 다른 질환 치료용 약물을 새로운 기전으로 재해석해 파킨슨병 치료제로 활용하는 접근법으로,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제약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떨림, 경직, 운동 완서, 자세 불안정 같은 운동 증상과 함께 인지 저하, 수면장애, 우울감 등 다양한 비운동 증상이 동반된다. 그러나 유전, 염증, 산화스트레스,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단백질 응집 등 복합적 병리 기전이 얽혀 있어 단일 표적 신약 개발은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따라 최근 연구는 안전성과 약리작용이 검증된 기존 약물 중에서 신경보호 효과가 기대되는 후보군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 치료 후보로 검토되는 약물은 항고혈압제 이스라디핀(Isradipine), 덱스메데토미딘(Dexmedetomidine), 천식치료제 몬테루카스트(Montelukast), 발기부전치료제 실데나필(Sildenafil), 항균제 리팍시민(Rifaximin), 항우울제 에스시탈로프람(Escitalopram), 파록세틴(Paroxetine), 벤라팍신(Venlafaxine), 둘록세틴(Duloxetine), 정신의학용제 아리피프라졸(Aripiprazole), 그리고 카페인(Caffeine) 등이다.

 

이들 약물은 본래 심혈관계, 호흡기, 정신의학, 감염질환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도파민 신경세포 손상을 억제하거나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작용이 보고되며 신경보호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스라디핀은 칼슘통로차단제 계열로 신경세포의 칼슘 유입을 억제해 산화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몬테루카스트는 미세아교세포 활성화를 억제해 염증 반응을 줄이는 효과가 동물실험에서 입증됐다.

 

항우울제 계열 중에서도 에스시탈로프람, 파록세틴, 벤라팍신, 둘록세틴 등이 신경가소성을 촉진하고 염증 경로를 억제하는 효과로 신경보호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약물 재창출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약물이 이미 시판되어 안전성과 약동학 정보가 확보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이 평균 10~15년, 수십억 달러가 드는 반면, 약물 재활용은 절반 이하의 시간과 예산으로 임상 2~3상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다만 파킨슨병의 복합적인 병인 특성상 단일 약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병용요법 또는 다중 표적 약물(multi-target agents)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후보가 전임상 혹은 초기 임상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장기 복용 시 신경보호 효과와 약물 상호작용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연구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약물 재활용은 신약보다 현실적이지만,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파킨슨병 치료 패러다임이 ‘새로운 약’이 아닌 ‘새로운 활용’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흐름이 성공한다면 파킨슨병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과 루게릭병 등 다른 신경퇴행성 질환에서도 혁신적인 치료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