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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진이 오래된 고혈압 치료제 ‘레세르핀(Reserpine)’이 시각을 담당하는 망막신경세포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는 희귀 유전성 실명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의 치료 가능성을 제시하며,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eLife에 게재됐다. 레세르핀은 1955년 고혈압 치료제로 승인받았으나 부작용으로 인해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NIH 국립안연구소(NEI) 아난드 스와룹(Anand Swaroop) 박사 연구팀은 이 약물이 망막의 광수용체세포(rod photoreceptor)를 보호하는 신경보호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와룹 박사는 “레세르핀의 작용은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유전적 원인이 다양한 망막색소변성증에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감지하는 망막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실명에 이르는 질환이다. 현재 일부 유전자 치료가 개발 중이지만 특정 변이에 한정되고 고비용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로돕신(rhodopsin) 유전자 변이를 가진 RP 쥐 모델을 활용했다. 레세르핀을 투여받은 쥐는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광수용체 기능이 유지되고 시세포 구조도 안정적으로 보존됐다. 특히 암컷 쥐에서 수컷보다 뚜렷한 보호 효과가 나타났는데, 암컷의 경우 막대세포뿐 아니라 원뿔세포(cone)까지 보존되는 경향을 보였다. 스와룹 박사는 “성별 차이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향후 연구를 통해 성별 맞춤형 시각질환 치료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2023년 발표된 선행 연구를 확장한 것으로, 당시 연구에서는 CEP290 유전자 변이로 인한 LCA10(Leber’s congenital amaurosis) 모델에서 레세르핀이 시세포 손상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처음 보고됐다. 연구진은 현재 레세르핀 유사체(derivatives)를 개발 중이며, 진행이 느린 망막이영양증(retinal dystrophy) 환자에게 시력 저하를 늦추는 치료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와룹 연구팀은 “레세르핀은 소분자 약물로, 안구 내 국소 투여 시 매우 낮은 농도에서도 효과가 나타난다”며 “이는 유전자 치료보다 접근성과 비용 면에서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과거 레세르핀은 전신 투여 시 우울증 등 부작용이 보고됐지만, 이번 연구에서 제시된 용량은 기존보다 훨씬 낮고, 국소 주입 방식이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평가됐다.

 

NIH 국립안연구소는 “이번 발견은 단순한 약물 재활용을 넘어, 시세포 생존을 촉진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며 “다양한 유전적 망막질환에 적용 가능한 플랫폼 치료제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향후 레세르핀 기반 차세대 약물군의 임상 전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며, “유전자 치료가 닿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력 상실을 늦추는 ‘브릿지 치료제’로서 레세르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