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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임상시험에서 다발골수종 치료제이자 카포시육종 치료제로 사용되는 포말리도마이드(Pomalidomide)가 희귀 유전성 출혈질환 HHT(유전성 출혈성 모세혈관확장증) 환자에게 탁월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중간 분석에서 약효와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돼 예정된 4년 일정보다 앞서 임상을 조기 종료했으며, 이번 결과는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에 게재됐다.

 

연구를 총괄한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의 안드레이 킨젤스키 박사는 “희귀질환에서 이 정도 수준의 유효성을 보인 사례는 드물다”며 “이번 연구는 HHT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 역사적 이정표”라고 말했다. HHT(Osler-Weber-Rendu 증후군)는 전 세계 약 5,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유전 질환으로,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돼 쉽게 새고 터지며 반복적 코피, 위장관 출혈, 점막 출혈이 나타난다.

 

중증 환자는 빈혈과 피로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뇌·폐·간혈관 손상으로 출혈이나 심부전이 발생해 생명을 위협받는다. 지금까지의 치료는 혈관결찰이나 레이저 소작 같은 국소적 조치에 머물렀으며, 일부 비승인 약물이 사용됐으나 장기 효과는 없었다. 포말리도마이드는 혈관신생억제제 계열로 혈관 벽을 강화하고 비정상적인 가지 형성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진다.

 

이를 통해 혈관 구조를 근본적으로 안정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구진은 HHT 치료에 적용했다. 임상은 2019년 1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미국 내 11개 기관에서 144명의 중등도 이상 HHT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중 95명은 하루 4mg의 포말리도마이드를 복용했으며, 부작용 시 2~3mg으로 감량됐다. 대조군 49명은 위약을 투여받으며 기존 치료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코피의 빈도, 지속시간, 중증도를 종합 점수화한 HHT 출혈평가도구를 이용하고, 수혈 및 철분 주입 횟수와 삶의 질(QoL)을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포말리도마이드군은 코피 중증도가 뚜렷하게 감소했고 수혈 및 철분 주입 횟수도 대폭 줄었다.

 

피로감 개선과 일상생활 수행능력 향상 등 삶의 질 점수 역시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효능이 사전 설정된 통계 기준을 충족하면서 연구는 43개월 시점에서 조기 종료됐다. 주요 부작용은 변비, 발진, 백혈구 감소였지만 대부분 경미했고 용량 조절로 해결됐다. 전반적인 안전성은 우수한 수준이었다. 킨젤스키 박사는 “포말리도마이드는 증상 완화제가 아니라 비정상적 혈관 형성을 근본적으로 교정하는 치료제”라며 “특히 폐나 간, 뇌에 혈관 기형이 생긴 중증 환자에게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흥미롭게도 약물 복용을 중단한 일부 환자에서도 4~6개월간 코피 재발이 없었다. 이는 장기 유지요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를 공동 주도한 클리블랜드클리닉의 키스 맥크레이 교수는 “포말리도마이드는 HHT의 병태생리에 직접 작용해 질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며 “이제 HHT는 통제가 가능한 질환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장기 복용 시 안전성, 재발률, 장기혈관 기형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후속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