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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제약업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지난 9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의 자리를 지켜온 머크(Merck)의 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비만·당뇨 치료제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에 왕좌를 내줬다. 릴리는 24일(현지시간) 2024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티르제파타이드의 분기 매출이 101억 달러(약 13조 9천억 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올해 누적 매출은 248억 달러(약 34조 원)로, 전년 대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와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Zepbound)’로 판매되고 있으며, GLP-1과 GIP 두 호르몬을 동시에 조절하는 ‘듀얼 액티브’ 기전으로 당뇨와 비만을 한 번에 겨냥한다.

 

반면 머크의 키트루다는 3분기 81억 달러, 연간 누적 233억 달러(약 32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릴리의 상승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키트루다는 2014년 승인 이후 9년간 세계 의약품 매출 1위를 지켜왔으나, 티르제파타이드는 출시 2년 만에 이 기록을 넘어섰다. 시장조사기관 비저블 알파(Visible Alpha)에 따르면 올해 티르제파타이드의 연간 매출은 322억 달러, 키트루다는 318억 달러로 예측돼 명실상부한 세대교체가 확정됐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매출 경쟁을 넘어 ‘GLP-1 계열 치료제’가 전통적 블록버스터를 대체하는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했음을 상징한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는 혈당 조절뿐 아니라 식욕 억제와 체중 감소 효과를 동시에 보여 당뇨에서 비만 치료로 영역을 확장했다. 글로벌 비만 치료 시장은 2030년 1,000억 달러(약 136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의 ‘위고비(Wegovy)’와 ‘오젬픽(Ozempic)’이 선도해 왔다. 그러나 티르제파타이드는 더 강력한 체중 감소 효과와 복합 기전으로 노보노디스크를 추월하며 차세대 주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22년 당뇨병 치료제로 첫 승인받은 뒤 불과 1년 만에 비만 적응증을 획득해 매출 1위에 오른 속도는 제약 역사상 전례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GLP-1 계열 약물은 단기 유행이 아니라 대사질환 치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며 “릴리는 당뇨·비만 시장에서 이미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릴리의 실적 발표 직후 노보노디스크가 비만 신약 개발 스타트업 ‘Metsera’ 인수 제안을 공식화하며 M&A 전선이 달아오르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화이자도 같은 기업과 협상을 진행 중이었기에, 비만 치료제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제품 출시를 넘어 인수·합병 단계로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릴리의 성공이 다른 빅파마들의 GLP-1 투자 가속화를 촉발했다”며 “향후 대사질환 분야의 신약 개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성과로 릴리는 단일 의약품으로 가장 빠른 200억 달러 매출 달성 기록을 세우며 제약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올해 릴리의 주가는 70% 이상 급등했고, 시가총액은 8,000억 달러를 넘어 제약업계 ‘빅3’를 제쳤다. 머크는 여전히 항암제 분야에서 강세를 유지하지만, 이번 결과는 시장이 질병 치료 중심에서 ‘삶의 질 향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만 치료제가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닌 심혈관·대사질환 예방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약산업의 성장 전략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