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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전례 없는 지도부 교체 사태를 맞으며 공중보건계가 혼란에 빠졌다. 백신 회의론자로 알려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보건장관이 과학적 절차를 무시하고 CDC 운영에 직접 개입하면서, 아동 백신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 케네디 장관은 CDC 수전 모나레즈(Susan Monarez)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유는 그녀가 “CDC 백신자문위원회(VAC)가 제시한 모든 권고안을 조건 없이 승인하라”는 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VAC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정책을 자문하는 독립 전문가 그룹이지만, 이번 위원회는 케네디가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는 인사들로 새로 꾸렸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케네디 장관은 모나레즈 해임 직후, 전 생명공학 투자자이자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짐 오닐(Jim O’Neill)을 CDC 국장 대행으로 임명했다. 오닐은 “신약은 임상시험을 마치기 전이라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로, 과학계에서는 근거 중심 공중보건 원칙에 반하는 인사로 평가된다.

 

그는 팬데믹 당시 백신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의무접종 반대 운동을 지지한 전력이 있어, CDC가 과학보다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CDC 내부 핵심 간부 4명이 연쇄 사퇴했다. 특히 아동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NCIRD) 소장까지 사직하면서, 기관의 정책 연속성마저 위태로워졌다. 내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CDC의 과학적 판단 구조를 흔드는 정치적 개입”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주요 의학단체들도 일제히 경고에 나섰다. 하버드 의대 전염병학자 레베카 월시 박사는 “과학적 합의에 기반해야 할 백신 정책이 정치에 따라 바뀐다면 수십 년간 쌓아온 국민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소아과학회(AAP)와 미국예방의학회(ACP)도 공동 성명에서 “CDC는 과학적 독립성과 투명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이번 변화가 아동 백신 접종률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케네디 장관은 과거 ‘백신과 자폐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과학계의 비판을 받았고, “부모의 백신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의무접종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이런 주장이 정책에 반영될 경우, 미국 내 예방접종률이 급락하고 홍역·백일해 같은 전염병이 재확산할 위험이 높다는 경고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CDC가 과학의 중심이 아닌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며 “이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중보건 신뢰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라고 평가했다. 전 CDC 국장 토머스 프리든(Thomas Frieden) 역시 “백신 정책은 과학적 데이터와 집단면역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며 “지도부가 이를 거스른다면 CDC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충성심이 아니라 공중보건에 대한 전문적 헌신”이라며 “과학적 합의를 지키려는 인사들의 잇따른 퇴진은 심각한 경고 신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