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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항암제의 패러다임이 면역 기반 치료로 이동하면서, 기존 약물이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암젠(Amgen)의 골다공증 치료제 ‘데노수맙(denosumab)’이 대표적이다. 이 약은 본래 암 환자의 골전이 예방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엑스지바(Xgeva)’라는 이름으로 승인받았지만, 최근 연구에서 유방암 면역치료 반응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이 제시됐다.


스페인 벨비체 생의학연구소(IDIBELL) 연구진은 암젠의 지원을 받아, 데노수맙이 유방암 세포의 RANK 신호경로를 차단함으로써 면역항암제 반응성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연구는 생쥐 모델과 폐경 전 여성 루미날형 유방암 환자의 세포 샘플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결과, RANK 단백질은 암세포와 면역세포 간의 ‘의사소통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백질이 활성화되면 종양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지만, 반대로 RANK를 억제하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RANK 억제와 함께 면역관문억제제(CTLA-4, PD-L1 차단제)를 병용했을 때,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절반의 실험군에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단독 면역치료로는 효과가 없던 사례에서도 병용요법이 종양 성장 속도를 크게 늦췄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됐다. 논문에 따르면, 암세포는 RANK 신호를 이용해 면역치료로부터 ‘도피 경로’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종양 내 면역세포 유입이 현저히 증가했다. 이는 RANK 단백질이 면역항암제의 내성을 극복할 새로운 타깃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어 폐경 전 초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엑스지바 임상시험 데이터를 추가 분석했다. 이 시험은 수술 전 환자에게 두 차례 엑스지바를 투여한 뒤 조직 변화를 관찰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총 27명이 등록해 24명의 종양 샘플이 분석됐다. 임상은 2018년 모집 중단으로 조기 종료되었지만, 연구진은 환자 조직에서 RANK 단백질 억제와 면역세포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단기 투여만으로 종양 축소나 생존율 향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지바가 면역세포 활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점은 향후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의 근거로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유방암 치료에서 머크의 PD-1 억제제 ‘키트루다(Keytruda)’가 일부 환자에게 허가되어 있지만, 반응률은 제한적이다. 이에 학계는 암세포의 면역 회피를 유발하는 단백질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높이려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미국 신시내티대 연구팀은 단백질 FIP200을 차단해 PD-1 및 CTLA-4 억제제의 반응률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IDIBELL 연구팀은 “엑스지바의 RANK 억제 효과는 기존에 ‘냉담한(cold)’ 종양이라 불리던 면역비활성 유방암을 ‘뜨거운(hot)’ 종양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며 “앞으로는 RANK 억제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에 반응할 환자를 선별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biomarker)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골다공증 치료제로 출발한 기존 약물이 종양 면역 환경을 조절하는 새로운 항암 메커니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암 치료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면역항암제 반응률 향상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유방암 치료 분야에서, RANK 억제 전략은 향후 임상적 돌파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