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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연구진이 이미 다른 질환 치료제로 승인된 약물을 폐경 전 여성의 유방암 예방약으로 재활용(repurposing) 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유방암 고위험 여성에게 새로운 예방 전략을 제시한 사례로,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연구는 맨체스터 유방센터(Manchester Breast Centre) 소속 사샤 하웰(Sacha Howell) 교수팀이 주도했다.


연구진은 여성호르몬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 이 유방암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프로게스테론은 유방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촉진해 암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전구세포(luminal progenitor cells)’의 증식을 돕고, 암세포가 자라기 쉬운 미세환경을 조성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과정을 차단하기 위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작용을 억제하는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ulipristal acetate)’ 를 활용했다. 이 약물은 이미 영국 NHS에서 자궁근종 치료제와 응급피임약 성분으로 승인된 약물이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임상에는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34~44세 여성 24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12주간 약물을 복용했으며, 투약 전후로 유방 조직 생검과 MRI 촬영을 시행했다. 그 결과, 유방 조직 밀도(breast density) 가 유의하게 감소했는데, 이는 유방암 위험이 낮아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초기 밀도가 높았던 여성일수록 약물 효과가 더욱 뚜렷했다.


또한 조직 내 콜라겐-6(Collagen VI) 단백질의 양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 단백질은 조직 경도를 높여 암세포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 감소함으로써 유방 조직이 보다 유연하고 종양 성장에 불리한 환경으로 변했다. 하웰 교수는 “이번 연구는 프로게스테론이 고위험군 여성의 유방암 발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임상적으로 입증한 것”이라며 “항프로게스테론 약물이 비침습적 예방치료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자인 브루노 시모이스(Bruno Simões) 박사는 “항프로게스테론이 유방 조직의 세포 구조를 재편성해 암세포가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며 “종양기원세포(tumor-initiating cells)가 감소하는 현상은 예방의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현재 유방암 고위험 여성들은 예방적 유방절제술이나 장기 호르몬요법에 의존하고 있어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크다. 이에 대해 영국 유방암재단의 사이먼 빈센트(Simon Vincent) 박사는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는 삶의 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옵션”이라며 “이미 승인된 약물을 재활용함으로써 빠른 임상 적용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향후 더 많은 참가자와 장기 복용 데이터를 포함한 확대 임상시험(large-scale trial) 을 계획 중이며, 약물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생체지표(biomarker) 도 개발 중이다. 맨체스터대 롭 클라크(Rob Clarke)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예방의학에서 드물게 조직 수준의 변화를 명확히 제시한 사례”라며 “향후 유방암 예방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