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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공격성과 자해 행동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보이지만, 그 뿌리는 의외로 같은 곳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후의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뇌 회로 수준에서 규명한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텍 프랄린 생의학연구소(Fralin Biomedical Research Institute)의 신경생물학센터에서 활동하는 신소라(Sora Shin) 박사 연구팀은 ‘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최신 논문을 통해, 조기 트라우마가 특정 뇌 회로의 칼슘채널을 과활성화시키며 공격성과 자해 행동을 동시에 유발할 수 있음을 밝혔다.


신 박사는 “공격성과 자해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뇌가 통증을 처리하는 방식의 이상에서 비롯된 동일한 신경 메커니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닌, 신경생물학적 변화에 의한 행동 결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연구진은 생애 초기 역경을 겪은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뉴클리어스 루니엔스(nucleus reuniens)’와 ‘해마(hippocampus)’를 연결하는 뇌 경로에서 특정 칼슘채널의 과활성화가 관찰됐다. 이 회로는 기억, 감정, 판단을 담당하며 전전두엽과 해마 사이의 핵심 연결로 작용한다. 해당 부위의 신경 활동이 과도하게 증가하면 충동성과 불안 수준이 높아지고, 공격적이거나 자해적 행동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박사는 “트라우마 경험이 신경세포의 칼슘채널 기능을 변화시키며, 뇌 회로가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로 재설정된다”고 설명했다. 즉, 뇌의 통증 인식 체계가 변화해 실제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감정적 고통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이것이 공격성 혹은 자해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설문이나 자기보고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추정되던 ‘공격성-자해 연관성’을 객관적인 뇌 회로 분석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 임상에서도 자해로 치료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과도한 공격성을 보일 확률이 5배 이상 높다는 보고가 있어, 이번 발견이 그 근거를 신경생물학적으로 뒷받침한 셈이다.


공동저자인 제인 정(Jane Jung) 박사후 연구원은 “조기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뇌 신경망의 구조적 변화로 남는다”며 “이 회로의 과활성은 통증 자극이 주어지지 않아도 공격적 충동이나 자기 파괴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클 프리들랜더(Michael Friedlander) 박사, 버지니아텍 생명과학부 부총장은 “이번 연구는 신경과학적 발견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는 공격성과 자해의 기초 원리를 규명한 혁신적인 성과”라며 “궁극적으로 보다 정밀한 정신건강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 박사 연구팀은 앞으로 인간 대상의 후속 연구를 통해 이 회로의 작동 방식을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칼슘채널 과활성을 제어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탐색할 계획이다. 이는 향후 충동조절장애, 폭력성, 자해 등 정신건강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접근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트라우마의 심리적 영향을 넘어, 뇌 신경망의 ‘물리적 재배선(回路再配線)’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즉, 어린 시절의 상처가 뇌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 성인의 행동 양식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조기 개입과 예방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공격성과 자해, 두 가지 극단적 행동의 이면에는 결국 ‘통증을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느냐’는 뇌의 문제, 즉 신경 회로의 언어가 숨어 있었다. 신소라 박사의 연구는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풀어내며, 정신의학과 신경과학이 만나는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