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ockphoto-2170291858-612x612.jp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오래전부터 ‘영생’과 ‘젊음의 샘’을 찾아 헤맸다. 최근에는 ‘장수’를 과학적으로 실현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방법인 식이 제한(dietary restriction)은 효과가 입증된 만큼 실천하기가 가장 어렵다. 그런데 만약 먹는 양을 줄이지 않고도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미국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의과대학의 스콧 리서(Scott Leiser) 박사 연구팀은 장수 유전자, 감각 자극, 그리고 환경적 요인 간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각각 실렸다.


연구팀은 모델 생물인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을 이용해 식이 제한이 수명 연장에 미치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장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fmo-2 유전자가 단순히 ‘음식 섭취’뿐 아니라 ‘촉감 자극’에 의해서도 조절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따르면, 예쁜꼬마선충이 음식 대신 미세 구슬(bead) 위에 놓였을 때—즉 실제 먹이를 만지는 듯한 촉감을 느꼈을 때—장수 유전자인 fmo-2의 발현이 감소했다. 그 결과, 식이 제한으로 얻어지는 수명 연장 효과가 사라졌다. 단순히 먹이를 ‘먹지 않아도’, ‘만지는 감각’만으로도 장수 효과가 억제된 것이다.


리서 박사는 “환경적 자극은 뇌의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과 타이라마인을 조절하고, 이것이 장수 유전자의 활성에도 영향을 준다”며 “촉각 자극이 장수 신호를 차단하는 회로를 작동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mo-2 유전자는 2015년 리서 박사팀이 장수와 관련된 핵심 인자로 규명한 효소다. 이 효소는 대사 경로를 재구성해 세포의 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킨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감각 자극에 의해 그 효과가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연구진은 “만약 인위적으로 fmo-2를 활성화할 수 있다면 굶지 않고도 식이 제한의 효과를 흉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음식 섭취를 줄이지 않고도 뇌를 속여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향후 인간의 노화 억제 치료제 개발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fmo-2 유전자가 단순히 수명뿐 아니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fmo-2가 과발현된 벌레는 주변 자극에 무감각해졌고, 먹이를 보거나 해로운 박테리아를 만나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이 유전자가 제거된 벌레는 탐색 행동이 현저히 줄었다. 두 경우 모두 트립토판 대사 변화가 관찰되었는데, 이는 fmo-2가 신경계와 대사 사이의 핵심 연결고리임을 의미한다.


리서 박사는 “어떤 형태로든 장수를 얻는 개입에는 부작용이 따른다”며 “이 유전자의 활성화로 인한 무감정이나 무반응 상태가 인간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이 경로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보조제나 약물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장수’라는 생명과학의 오랜 화두에 감각과 행동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더했다. 결국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세포의 노화 속도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느냐’일지도 모른다. 리서 박사팀은 앞으로도 뇌, 대사, 행동, 건강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규명해 노화 억제 약물 개발에 기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