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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연구팀이 중독 위험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진통제 후보물질 ‘VIP36’을 개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약물은 인체의 칸나비노이드 수용체 1형(CB1)을 표적으로 하며, 급성 및 만성 통증을 완화하는 동시에 기존 CB1 표적 약물에서 문제가 되었던 내성이나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세 가지 동물 모델에서 모두 통증 억제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이는 향후 비(非)오피오이드 기반의 신경통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CB1 수용체는 뇌의 통증 회로를 포함해 전신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단백질로, 오랫동안 오피오이드를 대체할 수 있는 통증 치료 표적 후보로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기존의 CB1 작용제들은 반복 사용 시 내성이 빠르게 생기거나, 약물이 뇌로 침투해 인지 기능 저하나 기분 변화, 불안 등 부작용을 유발하는 한계를 지녔다. 특히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약효를 얻기 위한 용량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준으로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컴퓨터 모델링을 기반으로 CB1의 분자 구조를 정밀 분석했다. 이후 수용체의 특정 결합 부위에 맞게 분자를 설계해 ‘열쇠와 자물쇠’처럼 선택적으로 작용하도록 최적화했다. 그 결과 탄생한 VIP36은 기존 약물보다 ‘말초 선택성(peripheral restriction)’이 뛰어나, 뇌로의 약물 이동이 최소화되면서도 통증 완화 효과를 유지했다. 즉, 통증 부위에 직접 작용하면서 기분 변화나 인지 장애 같은 부작용 없이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VIP36은 CB1 수용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자체가 기존 약물과 달랐다. 이 물질은 CB1을 완전히 활성화시키지 않고, 부분적 또는 변조된 형태로 작용함으로써 내성 발생을 억제했다. 연구진은 “VIP36은 수용체의 신호전달을 세밀하게 조절해 반복 투여에도 약효 감소가 거의 없었다”며 “기존 CB1 작용제들이 가지던 한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했다”고 밝혔다.

 

칸나비노이드 수용체는 G-단백질 결합 수용체(GPCR)라는 거대 단백질군에 속하며, 이 계열은 후각과 시각, 기분 조절, 면역 반응, 자율신경 조절, 혈압 조절, 종양의 성장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관여한다. 이번 연구는 통증 치료뿐 아니라 GPCR 계열을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약물 설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가 비중독성 진통제 개발 경쟁의 흐름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오피오이드 의존과 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VIP36과 같은 CB1 기반 신약은 중독 위험 없이 강력한 통증 조절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향후 독성 평가와 인체 임상시험을 거쳐, 수년 내 새로운 비마약성 진통제 후보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통증 치료의 패러다임은 지금, ‘중추억제’에서 ‘정밀 제어’로 이동하고 있다. CB1의 구조적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된 VIP36은 단순한 신약 후보를 넘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통증 관리 시대를 여는 과학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