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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희귀 유전질환인 HHT(Osler-Weber-Rendu 증후군)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 대안이 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실린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면역조절제인 포말리도마이드가 코피의 빈도와 중증도를 크게 감소시키고, 빈혈로 인해 반복적으로 필요했던 수혈과 철분 주입 횟수를 유의하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옵션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HHT 환자들에게 새로운 장기 치료 가능성이 제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HHT는 체내 혈관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하고 뒤엉킨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선천성 혈관 기형 질환으로, 혈관벽이 매우 약해 쉽게 파열되는 특징을 보인다. 환자들은 반복적인 코피, 위장관 출혈, 점막 출혈 등을 경험하며 중증 빈혈과 삶의 질 저하를 겪는다. 폐·뇌·간 등 주요 장기에 혈관 기형이 생기면 생명을 위협하는 출혈이나 심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혈관을 폐쇄하는 시술이나 지혈을 돕는 약제를 단기적으로 사용하는 방식 외에 FDA 승인 치료제가 없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 소속 안드레이 킨젤스키 박사는 “희귀질환에서 확실한 치료 효과를 보인 약제가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환자들의 삶에 중요한 희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과정을 약물이 차단함으로써 혈관 구조를 더 안정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주요 기전으로 추정했다.

 

이번 임상시험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11개 의료기관에서 HHT로 인한 중등도 이상 코피를 겪고 있는 성인 환자 14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 중 95명은 포말리도마이드 4mg을 복용했으며, 변비나 발진, 백혈구 감소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면 3mg 또는 2mg으로 감량했다. 나머지 49명은 외관이 동일한 위약을 복용하며 기존 치료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코피의 중증도를 평가하기 위해 HHT 전용 출혈 평가 도구를 활용했고, 환자가 직접 보고한 생활 속 출혈 영향도와 수혈·철분 주입 횟수를 함께 분석했다.

 

정된 연구 기간이 끝나기 전인 43개월 시점의 중간 분석에서 포말리도마이드는 미리 설정된 효과 기준을 충족했다. 위약군과 비교했을 때 코피 중증도가 의미 있게 낮아졌고, 반복적 수혈과 철분 투여가 필요한 빈혈 발생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결과에 따라 연구는 더 이상의 추가 모집 없이 조기 종료되었으며, 전문가들은 “치료제 부재로 고통받아온 HHT 환자들에게 새로운 옵션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연구 종료 후 장기 추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키스 맥크레이 교수는 일부 환자들이 약물 복용을 중단한 뒤에도 4~6개월 동안 출혈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장기적 또는 간헐적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이 약제가 보다 심각한 형태의 HHT 환자에게까지 치료 효과를 보인다면, 폐·뇌·간 등 주요 장기의 혈관 기형으로 인한 생명 위기 상황을 예방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말리도마이드가 아직 FDA의 HHT 적응증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희귀질환 치료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 안전성 평가와 보다 넓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번 결과가 향후 표준 치료 개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