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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고혈압이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실제 손상이 언제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웨일 콘넬 메디슨 연구진이 혈압이 눈에 띄게 상승하기 전부터 이미 뇌 속 세포와 혈관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구는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뉴런(Neuron)’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고혈압과 인지 장애의 연관성을 분자·세포 수준에서 세밀하게 추적했다. 고혈압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인지 기능 저하 위험이 1.2~1.5배 높다는 보고가 있지만, 기존 혈압약이 인지 개선에는 큰 효과를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뇌 손상이 단순히 혈압이 올라간 뒤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진행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연구는 마우스 모델을 활용해 고혈압 유발 호르몬인 ‘안지오텐신’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목할 점은 투여 후 단 3일 만에 뇌 속 여러 세포에서 유전자 발현 변화가 감지됐다는 것이다. 이 시점은 아직 혈압이 상승하기 이전이었다. 웨일 콘넬 뇌·마음 연구소장인 코스탄티노 이아데콜라 박사는 “인지 기능에 중요한 세포들이 너무 이른 시점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확인됐다”며 “고혈압의 문제는 혈압 수치 이상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특히 뇌 혈관을 이루는 ‘내피세포’에서 빠른 노화 패턴을 발견했다. 에너지 대사가 줄고 노화 표지 물질이 증가해 혈관 기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혈액 속 물질이 뇌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혈액–뇌 장벽’도 약해지는 양상이 관찰됐다. 이는 독성 물질이나 염증 물질이 뇌 조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 신호로 여겨진다.


또 다른 변화는 신경 신호 균형을 담당하는 ‘인터뉴런’에서 나타났다. 이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면 흥분과 억제 신호의 균형이 깨져 기억력과 사고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알츠하이머병 초기에서 관찰되는 패턴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백질을 이루는 ‘희소돌기교세포(올리고덴드로사이트)’ 역시 영향을 받았다. 신경세포를 감싸는 마이엘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발현이 감소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신경 전도 속도가 떨어질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 42일이 지나 혈압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시점에는 더 많은 유전자 변화와 뚜렷한 인지 저하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고혈압약 중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인 로사르탄이 일부 초기 변화를 되돌렸다는 점도 확인했다. 내피세포와 인터뉴런의 손상 신호가 줄어들어, 혈압 조절 약물 중에서도 뇌 건강에 더 유리한 종류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아데콜라 박사는 “고혈압 치료는 심장과 신장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뇌 건강 측면에서도 조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고혈압으로 인해 가속화된 미세혈관 노화가 어떻게 신경세포와 백질 기능을 무너뜨리는지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고혈압을 단순히 혈압 수치의 질환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뇌 전반에 걸친 초기 변화를 포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혈압이 오르기 전부터 이미 조용히 시작되는 뇌 손상을 막을 수 있는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