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ockphoto-2166588243-612x612.jp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존 연구에서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관찰은 있었지만, 치매가 이미 진행된 환자에서도 유의미한 보호 효과가 나타났다는 보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Cell’에 게재됐으며, 영국 웨일스의 백신 도입 정책 변화를 활용한 자연실험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3년 웨일스 정부가 대상포진 백신을 도입하면서 1933년 9월 2일 이후 출생자만 접종 대상에 포함됐고, 이 기준일 이전 출생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연구진은 이 정책적 경계를 활용해 두 집단의 인지 기능 변화를 장기간 비교했다.


연구 결과,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인구는 맞지 않은 사람보다 9년 동안 치매 진단 위험이 약 20퍼센트 낮았다. 또한 치매 전 단계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 진단률도 3.1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 의대 알버토 아스케리오 교수는 “백신 접종자들이 일반적으로 더 건강한 경향을 보이는 ‘건강한 접종자 편향’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연구는 정책적 기준일을 활용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사망 위험 감소 효과다. 연구에 따르면 백신 접종자는 치매로 인한 사망 위험이 29.5퍼센트 낮았다. 전체 사망률 역시 22.7퍼센트 감소해 백신이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스탠퍼드 의대 파스칼 겔트제처 교수는 “질환의 어느 시점에서 접종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치매 진단 이후에도 혜택이 이어진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백신이 직접적으로 뇌를 보호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면역 반응과 바이러스 재활성화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면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옥스퍼드대 막시므 타케 명예교수는 “효과의 크기가 예상보다 커서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하지만, 이 결과가 검증된다면 치매 연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매는 말기에는 호흡곤란, 영양 부족 등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예방이나 진행 억제 효과를 가진 치료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는 “우연한 발견처럼 보이지만 치매 관리의 새로운 실마리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아직 관찰 기반 분석에 해당하며, 향후 추가적 검증과 기전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럼에도 치매 예방과 관리 전략에서 백신의 잠재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