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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크론병은 대표적인 염증성 장질환으로, 장벽에 반복적인 염증이 발생하며 복통, 설사, 체중 감소 등 다양한 증상이 지속되는 만성 질환이다. 그동안 크론병이 왜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재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제시돼 왔지만, 장내 면역세포의 역할을 분자 수준에서 명확히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의대(UCSD) 연구팀은 대식세포의 기능을 좌우하는 핵심 분자 경로를 밝히며 크론병의 발병 기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시했다.


장 점막을 지키는 대식세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세균 공격을 담당하는 ‘염증성 대식세포’와 손상된 장벽을 회복시키는 ‘비염증성 대식세포’다. 정상적인 장에서는 두 세포가 균형을 이뤄 감염을 막고 동시에 조직의 치유를 돕는다. 그러나 크론병에서는 염증성 대식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로 인해 장 점막이 반복적으로 손상되고 염증이 진정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기술을 활용해 건강한 장 조직과 염증성 장질환 환자 조직에서 수집된 수천 개의 대식세포 유전자 발현 데이터를 비교했다. 그 결과, 대식세포가 염증성 또는 회복성 유형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구분해주는 ‘53개 유전자 서명’이 발견됐다. 이는 크론병의 장기적인 염증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지표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된 요소가 바로 ‘NOD2’ 유전자다. NOD2는 2001년 처음 크론병 위험 유전자로 확인되었으나, 실제로 면역세포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비염증성 대식세포에서는 NOD2 단백질이 기르딘(girdin)이라는 단백질과 결합해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두 단백질이 결합하면 염증을 무분별하게 확대시키지 않고, 침입한 세균을 안정적으로 제거하며 조직 회복을 돕는다.


하지만 크론병 환자에게 흔한 NOD2 변이는 기르딘이 결합해야 하는 부위가 손실되어 있다. 즉, 면역 균형을 잡아주는 ‘조절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이로 인해 염증성 대식세포가 우세해지고, 장 내 염증이 지속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프라디프타 고쉬 UCSD 교수는 “NOD2는 장내에서 침입자를 감지하는 감시 시스템이며, 기르딘과 결합해야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며 “이 결합이 사라지면 염증을 조절하는 체계가 붕괴하고 만성 염증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분자 경로가 실제 생체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물 모델 연구도 진행했다. 기르딘이 결핍된 생쥐는 정상 생쥐에 비해 더 심한 장내 염증을 보였고, 미생물 균형이 크게 무너졌다. 일부 생쥐는 염증이 전신으로 퍼지는 패혈증으로 사망해 면역 조절 실패의 위험성을 보여주었다.


공동 제1저자인 가자난 캇카르 박사는 “장 환경은 끊임없이 세균과 면역세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복잡한 공간”이라며 “이번 분석을 통해 두 종류의 대식세포가 어떻게 다른 면역 프로그램을 갖는지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크론병의 질환 기전을 세포 및 유전자 수준에서 설명하며 치료 개발 가능성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문가들은 대식세포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방향이 향후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아직 초기 연구 단계이므로 임상 활용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