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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성적 성숙 이전에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신경계 발달을 영구적으로 변화시켜 성체의 행동까지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굶주림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뇌 회로의 정상적인 재배선을 막아, 성체가 되었음에도 미성숙한 행동을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진이 주도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Nature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투명한 몸을 가진 선충 C. elegans를 이용해 환경 스트레스가 신경 회로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관찰했다.

 

이전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수컷 선충이 성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에서 특정 신경 회로의 연결 구조가 유전적으로 재편성된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이 재배선 과정은 성체 수컷의 행동과 짝짓기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성적 성숙 이전에 굶주림을 겪은 개체에서 이러한 회로 재구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성숙 전 굶주림으로 인해 수컷 선충이 ‘다우어 상태’라는 성장 정지 단계에 진입했다가, 이후 정상 환경으로 돌아와 성체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 회로는 미성숙한 상태로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정상적인 경우 성숙 과정에서 제거돼야 할 신경 연결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성체가 되어도 미숙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행동 실험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굶주림을 겪은 수컷 선충은 성체임에도 불구하고 유해 화학물질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했고, 짝짓기 행동에서도 정상 수컷보다 현저히 떨어진 수행 능력을 보였다. 이는 신경 회로 구조 변화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굶주림 상태에서는 옥토파민이라는 물질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세로토닌 생성이 억제됐고, 이로 인해 신경 회로 가지치기 과정이 차단됐다. 반대로 굶주림 상태에서 세로토닌을 보충하면 정상적인 회로 재구성과 성숙한 행동이 회복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환경과 유전자가 신경계 발달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초 연구라고 평가한다. 연구진은 인간의 복잡한 신경계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성장기 스트레스가 장기적인 뇌 기능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