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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수십 년 전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되던 약물이 실명을 유발하는 희귀 유전 질환의 치료 후보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안연구소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레세르핀이 망막색소변성증에서 시세포 생존을 돕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eLife에 발표됐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의 시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실명에 이르는 유전 질환이다.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에 시력 저하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매우 다양해 현재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최근 유전자 치료가 시도되고 있으나, 특정 유전자 변이에만 적용 가능하고 개발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존 약물의 재창출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험 결과 레세르핀은 특정 유전자 변이와 무관하게 시세포의 생존을 돕는 신경보호 효과를 보였다. 특히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시세포의 핵심 기능이 유지되면서 시각 신호 전달 능력이 보존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질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중요한 기전으로 평가된다.

 

흥미로운 점은 성별에 따른 차이였다. 암컷 실험동물에서 레세르핀의 보호 효과가 수컷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색각을 담당하는 원추세포 역시 더 잘 보존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향후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세르핀은 과거 부작용 문제로 고혈압 치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연구진은 망막 질환 치료에 필요한 용량은 매우 낮고 국소적으로 안구에 투여할 수 있어 안전성 측면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향후 보다 효과적이고 부작용을 줄인 유사 약물 개발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이번 연구는 치료가 어려웠던 유전성 망막 질환에서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완치를 목표로 하기보다 시력 소실을 지연시켜 삶의 질을 유지하는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